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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나라

빛나는 도시 알렉산드리아

클레오파트라가 태어난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가장 큰 도시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다른 70여 개의 도시에 그랬던 것처럼 B.C. 322년, 이 거대한 인구 조밀 지대와 작은 도시 라 케데트(그리스 정치적 수완이 능란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들은 어로 라코 티스)를 세라피스와 이집트의 고대 선택해 자신의 이름을 여신인 이시스를 결합시켰다.

 

 

역사의 시작점

여신은 붙이려고 했다. 병 고치는자,뱃사람의 그러나 라 케데트는 수호자, 뮤즈의 인도자 등 수많은 이름을 가졌다. 거대한 알렉산드리아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플루타르크는 알렉산더의 꿈속에서 존경스러운 얼굴과 자태를 지닌 백발의 노인이 알렉산드리아를 지정해 주었다고 전한다.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만나는 곳이요, 나일강 삼각주에서 떨어져 있으며, 북으로는 파로스섬의 보호를 받고, 남으로는 마레오 티스 호수의 보호를 받는 절묘한 지형의 이 신도시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 때 이집트의 수도가 되었다. 알렉산더는 바다에서 너무 먼 데다가 이집트 사제들이 오기도 불편한 테베보다 알렉산드리아를 선호했다. 클레오파트라가 통치하던 시대가 알렉산드리아의 절정기였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화려한 대리석 건축물과 궁전, 극장, 원형경기장, 사원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고 소개될 정도였다. 그중에는 라지드 왕조를 보호해 주는 포세이돈과 디오니소스를 모신 사원도 있었고 세라피온 사원도 있었다. 세라피온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이집트에서 도입한, 제우스신과 오 시 리스 신을 혼합한 세라피스 신을 모셨다. 파로스섬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빛나는 대리석으로 된 높이 130m의 3층 탑인 등대의 비율과 우아한 모습은 고대인에 대한 감탄을 자아낸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 크니디아 출신 건축가인 소스트 라테스가 만든 이 탑은 배를 인도하는데, 55km 거리에서도 그 불빛이 보인다. 클레오파트라는 알렉산드리아 북동구의 브루키 온에 살았다. 그곳에는 정원이 딸린 화려한 왕궁들이 한데 있었는데, 그것들은 로키아 섬까지 뻗어 바다에 닿았다. 길이 6km, 너비 1.5km 정도의 긴 평행사변형의 알렉산드리아 시가지에는 로데스 섬 출신의 디노 크라테스가 고안한 넓은 도로망이 시원하게 깔려 있었다. 7스타드(고대 그리스의 길이 단위로 7 스타 드는 1,200m에 달함 : 역주)의 대로가 파로스섬과 육지를 이어 주었고, 동쪽에는 그랜드항이, 서쪽에는 굿리턴항이 형성되었다.


세계의 무역항 알렉산드리아

지중해 전역에 걸쳐서 우아한 모양의 도자기들이 매매되었다. 뚜렷한 윤곽에 다채로운 색깔로 채색된 도자기들은 알렉산드리아 제품이었다. 거리는 늘 사람들로 북적댔다. 시가지에는 30만의 알렉산드리아 인이 살았고 세계 각지에서 온 70만 명이 변두리에서 살았다. 도시는 크게 세 개의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스인 공동체가 도심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 바위 위에 몇 층으로 된 흰 대리석 탑이 서 있었으니, 사람들은 이 빼어난 작품을 그 섬과 똑같이 파로스라 불렀다. 구원자 제우스로 보이는 거대한 상이 그 꼭대기에 놓았다. 이미 14세기에 훼손된 건물을 보고도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못했다. 15세기에는 베이가 요새를 짓기 위해 이 건물의 돌을 사용했다.


유태인 공동체가, 서부의 구시가지는 가난한 이집트인 공동체가 차지하고 있었다. 선원, 상인, 장인, 관리, 외국인 용병 등이 그 주위에 머물렀다. 운하와 저수지, 나일강과 마레오티스호의 물을 정화시켜 주는 정교한 장치들 없이 도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도심의 공원들만으로는 대기 오염을 막을 수 없자 알렉산드리아의 부자들은 마레오 티스호의 둑에다 정원과 과수원, 호화 별장을 짓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실크 로드(그 끝은 저 멀리 인도와 중국에까지 이른다.)와 항로의 교차점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자연히 상아, 향료, 이국산 과일, 식량, 술, 공예품 등 엄청난 교역품이 거래되는 시장이 형성되었다. 스트라본이 알렉산드리아를 가리켜 세계의 무역항이라 말했듯이,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최초의 식량 거래항이었다. 밀은 여러 식량창고에 보관되었다. 창고는 그리스인들이 남긴 파피루스에 테사 브로이라 기록되었다. 또한 쾌락의 판매도 이루어졌다. 엘레우시스나 카 노페 외곽은 무화과나 귀여운 여자를 뜻하는 키나 이디로 유명했다. 두 그림은 이집트 태생의 그리스인으로 추정되는 미술가가 이탈리아에서 완성한 방대한 규모의 모자이크이다. 그 리스화된 이집트에서 범람한 나일강 주변의 시끌벅적한 생활을 상징적으로 묘사했다. 탑문으로 장식된 이집트식 성전 조그만 그리스 사원을 향한 행렬 페르골라 밑에서 벌어지는 향연 (아래 왼쪽), 어부, 자기 집 앞에 있는 농부, 왕궁인 듯한 건물 앞에 있는 그리스 장갑 보병(가운데) 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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