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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저들에 대한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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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정보를 읽은 후에 뉴 에이저들에게 전도하는 것에 관해서 비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뉴에이지 운동에 참여하게 된 이유야 어떻든 분명한 사실은 이 사람들이 진리와 실재(궁극적인 존재)에 대해서 영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뉴 에이저들은 우리의 대적이 아닙니다. 대부분 그들은 순수한 개인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뉴에이지의 종교 제도와 거기에 연관된 사람들을 구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뉴 에이저들을 전도하는 방법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편집증이 교회 안에서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위에서 말한 구별을 못 할 경우 우리는 뉴에이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영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자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자들, 그리고 절대적으로 복음이 필요한 개인들로 여기기보다는 그들을 경멸하고 비난하게 될 것입니다.

뉴에이지 운동에 연관된 사람에게 전도하려면 뉴에이지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에 관해서 미리 정보를 제공받고 교육을 받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우리가 대화를 해 보면 어떤 뉴에이지 추종자는 영적인 것들에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신앙으로 묘사하는 것에 관해서 세밀하게 아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더글라스 R. 그루두이드가 쓴 《뉴에이지 운동의 정체》란 책과 F. 라가드 스미스가 쓴 《대단 히블리 한 처지에 빠져서》란 책이 이 점에 관해 매우 유익합니다.”스미스의 책은 다소 뉴에이지의 경전으로 여겨져 온 셀리 맥클레인의 《궁지에 빠져서》란 책에 대해 학구적으로 반박한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뉴에이지 운동에 참가하는 자들에게 전도할 때 주요한 장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리스도의 가르침들은 “깨달은 사고 (enlightened-thought)'라는 뉴 에이저들의 체계에는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양자택일의 여지를 전혀 남겨 놓지 않으셨다.

뉴 에이저들은 또한 죄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죄란 그들에게 진부한 개념입니다. 그들은 죄를 현대의 계몽된 사람에게 불합당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 14:6)고 선포했습니다. 뉴 에이저들은 이 같은 말씀으로 동정 어린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전 생애와 가르침들을 정직하게 생각해 봄으로써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들 중 많은 것은 사람들이 아무리 그것들을 통합하려 힘쓴다 할 지라도 다른 종교에 맞지 않습니다. 뉴에이지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고 물으셨던 그 동일한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뉴 에이저와 이야기할 때 우리가 쓰는 '그리스도인 (Christian)'이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정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뉴에이지의 혼란스럽고 모호한 세계에서는 '그리스도인'이란 말조차도 그것의 역사적인 의미가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것은 최근에 내가 한 라디오에서 유명 인사 인터뷰 프로를 들으면서 분명해졌습니다. 그 인터뷰 사회자가 청취자들을 초청해서 자칭 '대단한 영매요, 놀라운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부인과 그들이 만날 수 있게 주선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고의 모순됨을 뉴 에이저들에게 주 때문에 지적하여야 합니다.

뉴에이지는 눈치채지 못하게 사람의 마음을 미혹합니다. 이미 말하였듯이 그것은 자기 신격화와 자기 자랑(자만)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뉴 에이저들에게 전도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뉴에이지의 자아에 대한 교활한 호소는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 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고 말했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 전에 뉴에이지 지도자였던 란달 바에르가 “뉴에이지에 담겨 있는 강한 경험들과 멋진 철학들이 심지어 가 장선 의의 사람들까지도 매우 철저하게 설득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도 대중들이 뉴에이지에 빠져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뉴에이지 운동이 인간의 철학과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마귀의 능력과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뉴에이지는 “광명의 천사(고후 11:14)”로 가장한 바로 그 사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뉴 에이저들이 일단 예수님을 자신들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고 회개하게 되면 우선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이 자신의 모든 뉴에이지 소지품들(수정, 보석, 부적 둥) 및 연관된 책을 소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하고 나면 놀랍도록 자유하게 된 것을 신자들의 관심이 넘치는 교제권에 즉시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월터 마틴은 자신이 뉴 에이저들에게 전도할 때 기억해 두면 도움이 될 몇 가지 중요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책에서 당신은 자신의 가족 내에 있는 뉴에이지에 연관된 사람들에게 당신이 영향을 주고자 할 때 당신을 지도해 줄 수 있는 많은 실제적인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단자 전도

우리는 모두 이단에 속 개인들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집에 찾아와서 우리에게 이단 책자를 주면서 자신들의 신앙에 관해서 우리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공항이나 길거리에서 기부금을 요구하는 최근의 동양의 구루(힌두교 교사)를 좋은 광신자들을 당신은 만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공갈 조의 말투를 들으면서, 그들이 우리에게 자신들이야말로 '진리'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고자 한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들이 예수님의 신성, 곧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어떤 이상한 것을 믿고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의 뾰족탑과 파이프 오르간의 수만큼이나 많은 이단들아 미국의 종교적인 풍토의 특징을 이루고 있습니다. 기독교 연구 기관 설립자요 이단 전문가인 월터 마틴은 미국 내에서 참된 성경적인 신앙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단자들이 약 2천만 명 있다고 했습니다. 

 

이단 중과에 빠지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것은 그 이단들이 기독교에서 탈선한 것이든 아니면 수입된 대규모의 동양 종교이든- 많은 신자들에게 깊은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단자들을 다루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연구해 왔다. 예를 들면 어떤 신자들은 자신들의 집에 찾아온 이단자들의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 버리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때때로 의로운 체합니다. 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길거리에서 이단자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창피를 주고자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이 너무나도 절망적으로 갈구하는 동정심과 자비를 걷어치우고 말게 됩니다.

수많은 신자들이 이단에 빠져 있는 자신들의 친척이나 친구가 사랑이 풍성하고 동정심이 많은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해 달라고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단자들에 대한 우리'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 너무도 자주 사랑과 이해심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이단자들에게 전도하기란 분명히 쉽지 않습니다. 우리 혼자서는 이단에 속한 사람이 회심하는 것을 결코 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용기를 내라. 이단자들도 참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사랑과 관심을 쏟음으로써 우리는 회심의 과정에 연결고리로 쓰일 수 있습니다.

이단 종파를 떠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이단에 빠진 지 처음 3년 이내에 그렇게 한다고 나는 들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단자들에게 전도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을 배가해야 합니다.

이단자들은 순한 경멸과 조롱이나 받아야 할 얼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대부분 부지런히 진리와 신(하나님)을 찾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지혜롭고 분별력 있게 그들에게 접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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