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이 삶이 모여 개인의 삶이 되고, 개인들의 삶이 모여 한 시대가 되며, 시대와 시대가 모여 하나 의거 대한 역사를 이룬다. 이 역사의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왔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역사의 한 과정을 이루며 흘러갈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그 사랑의 조건
역사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신의 의지가 실현되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인간 이성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인간 이성에 대한 확신은 헤겔에서 절정을 이룬다. 헤겔은 절대 이성이 자신을 구현해 가는 과정, 즉 자유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과정 자체가 역사라고 말한다.
이런 역사 인식에 유물론자들은 반론을 제기한다. 절대 이성의구현이나 자유의 구체화로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단순한 관념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물적 토대를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물론적으로 이해해야만 역사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물론은 물질만 강조한다는 비판도 있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정신'이 있기 때문인데, 유물론은 인간의 정신적 활동을 무시하는 문제 있는 사고방식이라는 비판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유물론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된 것일 뿐이다.
존재가 우선한다
유물론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 보자.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름답고 고귀한, 너무나 비극적인 사랑을 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되었다. 바로 이 사랑에 대해서 묻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인가?"유물론자라고 해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고귀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고귀한 사랑보다 물질적 조건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단지 이런 사랑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 있다고 주장할 뿐이다.
관념론자들은 고귀한 사랑에 어떻게 전제조건이 있을 수 있느냐며 항의할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
이 두 사람이 없다면 이들의 고귀한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첫 번째 전제조건이다.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삶을 영위함을 의미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관념적인 사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사랑도 하는 물질적인 사람이다.
이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태어나 먹고 자고 배설하면서, 또한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살지 고민도 하면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 전제조건으로는 평범하게 살아가던 로미오와 줄리엣이운명처럼 무도회장에서 만나야만 한다. 이 밖에도 이들이 사랑을 시작한 이후에도 일상생활을 해 나가야 하며, 이들이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동성에게 사랑을 느끼는 동성애자가 아니어야 한다. 로미오는 남성이고 줄리엣은 여성이므로 둘 중의 한 명이라도 동성을 사랑하는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은 서로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 다 이성애자이거나 최소한 양성애자여야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 사랑할 수 있다. 유물론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먹고 자고 배설하는 것만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유물론은 단지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을 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들이 먹고 자고 배설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가능하다고 주장할 뿐이다.
역사도 물적 조건이 있어야 가능하다
역사에도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이성의 구현, 자유의 구체화 등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단지 이것이 역사를 거쳐 이루어지려면 역사의 전제조건이 있어야만 한다. 역사의 전제조건은 다른 것이 아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듯이 역사가 존재하려면 필연적으로 인간이 존재해야 한다.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먹고 자고 배설하면서 구체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노동을 하는 인간이 존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역사의 첫 번째 전제조건이다. 인간이 한 번만 먹고 자고 배설하면서 자신의 삶을 단순하게 영위한다면 역사가 존재할 수 없다.
자신의 삶의 조건에 근거해서 새로운 욕망을 창조하고, 새롭게 충족해 가야만 인간의 역사는 가능할 수있다. 그 욕망은 허황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물질적 조건에 따라 실현할 수 있는 욕망이어야 하며, 욕망이 충족되는 과정 속에서만 인간
의 역사는 발전한다.
오늘 라면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면, 내일은 밥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싶다는 욕망이 발생해야 한다. 자신의 조건에 근거해서 밥으로 배를 채우기 위한 구체적인 노동을 해야만 역사는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계속 생산활동을 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의 두 번째 전제조건이다.
먹고 자고 배설하는 물적 조건을 확대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를 확대 재생산할 때 세대를 이어 가면서 인간이 존재할 수 있고, 그래야만 역사가 가능하다. 이것이 역사의 세 번째 전제조건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족은 가장 작은 하나의 사회를 구성한다.
고립된 개인이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일 뿐, 인간은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었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함께 생산하고 분배하면서 생활해 왔다. 사냥하고 채집할 때도, 시대가 발전해 농사를 지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후세를 낳아 키우고 가족제도를 만들어 왔다는 말이다.
2022.05.11 - [분류 전체보기] - 클레오 파트라의 대외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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