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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나라

알렉산드리아, 등대의 도시

B.C. 304년, 알렉산더 대왕의 디아도코스 ('후계자'란 뜻으로, 알렉산더의 후계를 다툰 장군들:역주)로서 공식적으로 프톨레마이오스 라지드 왕조를 세운 사람은 라고스의 아들 소테르 (구제자: 역주), 즉 프톨레마이오스 1세이다. 그는 바로 클레오파트라의 선조이다. 클레오파트라 이전에도 클레오파트라(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가진 공주가 여섯 명 더 있었다.

 

클레오파트라

이 어린 딸의 증조모는 페르시아 혈통의 시리아 공주인 셀루키데스로 바르바르(야만족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스 혈통을 이어받았다.) 곧 이어 아르시노에라는 딸과 훗날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14세가 될 아들 둘이 더 태어나지만, 가족 간의 유대는 전혀 없었다. 이전의 많은 이집트 왕가처럼 이 집안도 음모와 야심과 질투로 갈기갈기 찢겨 있었던 것이다. 여인들의 가문 내 역할도 적극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라지드 왕조가 파라오 율법에 따라 남매간의 결혼을 통한 여인들의 왕위 계승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죽은 파라오의 장남과 장녀는 결혼을 통해 파라오 부부가 된다. 클레오파트라 이전에 걱정될 만한 두 명의 라이벌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페레니케와 클레오파트라 6세이다. 이들은 프톨레마이오스와 그의 누이인 트리파이아(향락의 여인이라는 뜻)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번영된 왕국을 남기고 283년에 죽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를 이집트의 진정한 수도로 만들었고, 후계자들은 알렉산더의 군대를 알렉산드리아에 귀착시켰다.

B.C. 322년 알렉산더가 세운 도시의 혼적은 이지 찾아볼 수 없다. B.C. 25년 알렉산드리아 방문한 그리스:의! 지리학가 스트라본의 묘사에 따라 대략적인 지도를 추적해 볼 따름이다. 직각으로 짜인 그리스식 도시와 이집트 왕궁터를 동시에 갖춘 알렉산드리아는 도시의 북동쪽 전체가 파라오의 궁전을 위해 할당되었다. 이곳에는 알렉산더와 초기 라지드 왕조의 신성화된 영혼을 모시는 사당인 세마가 있었다. 전형적인 그리스-이집트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는 언덕 위에 세워진 금지붕의 세라피온 신전(왼쪽의 금화)이 세라피스에게 바쳐졌다. 세라피스는 오시리스와 의사의신 아스쿨라피우스, 제우스를 본따 프톨레마이오스가 창조한 신이다. 그리스인과 이집트인의 지지를 함께 받은 그의 제식은 나라 전체에 퍼져 행해졌다.

자신들이 마케도니아의 후손임을 잊지 않았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식민지인 아프리카와 중동의 풍습에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리스식 생활과 의복을 고수하고 그리스계 왕국 전역에서 쓰이던 공용어 코이네를 구사했다. 또한 식민지의 신들과 함께 그리스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다. B.C. 1세기경의 지리학자인 스트라본은 그들은 헬레니즘의 풍습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라지드 왕가의 여인들은
때로 살인까지 불러일으키는 궁정 안의 계략이나 음모, 그리고 권력의 행사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의 이름은 대체로 아르시노에, 페레니케. 클레오파트라인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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