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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나라

혼란한 정국을 정리하러 이탈리아로 간 옥타비아누스

클레오파트라는 혼란한 정국을 정리하러 이탈리아로 돌아간 옥타비아누스가 다시 원정에 오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옥타비아누스가 자신과 대립하는 것을 넓어서 안토니우스와 대립하고 결판 지으려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도피, 경이로운, 그러나 너무 대담한

그리하여 그녀는 인도쪽으로 도피할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녀는 악티움 해전에서 남은 배들을 수레에 실어 홍해 쪽으로 옮기도록 명령했다. 이에 대해 "전쟁과 굴욕의 위협에서 벗어나 자신의 모든 금은을 가지고 지중해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기 위해서"라고 플루타르크는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배는 옥타비아누스의 사주를받은 페트라의 아랍인들에게 포획되고 만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옥타비아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일련의 사건에 충격을 받은 안토니우스(아래)는크나큰 낙담에 젖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오파트라는 그를 옥타비아누스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협상? 죽음? 혹은 싸움?

B.C. 30년 초, 옥타비아누스는 이집트의 동쪽국경선에, 코르넬리우스 갈루스의 군대는 서쪽 국경에 진을 쳤다. 이집트는 양쪽에서 압박을 받았다. 그러자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에게 측근을 보내 협상 제의를 했다.

 

안토니우스는 모든 권력을 포기하고이집트나 그리스에서 평민으로 살겠다고 했다. 디온 카시우스에 따르면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구할 수만 있다면 목숨도 바치겠다."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옥타비아누스는 그 조건에 대답하는 대신, 충심의 표시로 자신의 왕홀과 왕관을 보낸 클레오파트라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녀 가공식적으로 왕위에서 물러나는 것과 안토니우스를 처형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옥타비아누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는 가운데이 불행한 부부는 의혹이 담긴 말다툼을 하고 다시 뜨겁게 화해한다.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그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죽음에이르게 할 만한 독약들을 모아 두었다."라고 한다. 그리고 선대의 왕들처럼 자신의 무덤을 준비했다. 두 개의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높은 사각 탑에 그녀는 금, 보석, 귀한 나무로 만든 가구, 향수, 그리고 적들이 탈취하려 할 경우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는 연료를 쌓아 놓았다.

 

옥타비아누스가 전령 티로스를여왕에게 보냈으나 안토니우스는 그를 심하게 때려 쫓아버렸다. 옥타비아누스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 모종의 공모가 있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B.C. 30년 봄, 펠루시움을 거쳐 옥타비아누스의 군대가 알렉산드리아에 이르렀다. 안토니우스의 기병대가 한 번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혼란해진 안토니우스는 적에게 결도를 신청하나 멸시 속에서 거절당한다. 7월 31일, 보잘것없는 군대가 옥타비아누스를 향해 진격했다. 보병만이 전투에 가담했고 기병대와 함대는 투항하고 말았다. 안토니우스의 수호신인 디오니소스가 그 전날 거대한 악대 행렬과 함께 알렉산드리아를 떠났다는 소문이 돋았다. "그토록 안토니우스가 닮고자 열망했던 신, 그가 그토록 합일되기를 바라던 신이 그들을 버렸다."

 

로마 군대는 도시의 관문을 계속지켰으며, 안토니우스는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왔다.


비극적인 오해

그때 능 슥에서 방어하던 여왕이 방금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안토니우스는 검을 빼어 노예 에로스에게 주면서 그것으로
자신을 쩔러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어린 노예 소년은 대신 자기 몸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그 용기에 감복한 안토니우스는 그 칼로 자기 배를 찔렀다.

 

바로 그때클레오파트라의 신하 디오메데스가 나타나 여왕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안토니우스는 죽어 가면서 여왕을 보기 위해 능으로 데려가 줄 것을 명했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의 군대가 쳐들어올 것에 대비하여 바리케이드를 쳐 놓은 클레오파트라는 두 하인 의도 움을 받아 피가 낭자한 안토니우스의 몸을 끌어올려 창문 안으로 맞아들였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를 누인 뒤 자기 옷을 찢어 덮어 주었다.

 

안토니우스를 전하, 나의 남편, 황제라부르면서, 자신의 비참한 처지는 잊은 체 멍이 들도록 자기 가슴을 치고, 얼굴로 비벼 피를 닦아 주었다."안토니우스는 '부끄러운 일도 불명 예스러운 일도 아니므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충고한 뒤 그녀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두었다.


클레오파트라를 굴복시킨 옥타비아누스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의 능에유폐된 채 자결하거나 보물들을 파괴하진 않을지 걱정했다. 그는 자신의 개선식 때로 마인의 조롱 속에서 그녀가 포박당한 채행진 하게 되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그는 신하 프로 쿨레 이우스에게 그녀의 처소를 침입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 것을 명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는 문 열기를 거절했다.그녀는 문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아이들이 살아서 이집트 왕국을 차지하는 조건으로 담판을 했다. 전령 갈루스도 탑에 침입하려 했다. 그사이에 프로 쿨레 이우스는 창문을 통 해능으로 침입했다.

 

놀란 클레오파트라가자결하려 하자 그는 단검을 빼앗았다. 이제 클레오파트라는 옥타비아누스의 노예에게 삼엄한 감시를 받는 수인이 되고 말았다.

 

 

안토니우스의 만찬
안토니우스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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