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안토니우스는 군사적 충돌은 원하지 않았다. 그는함법성을 유지하면서 원로원이 자신의 동방 지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기를 원했다. B.C. 33년 말, 그는 자신의악타 (보고서:역주)를 로마에 보넨다. 그리고 B.C. 32년 2월,안토니우스파 집정관들인소시우스와 아에노바르부스가원로들 앞에서 격앙된 어조로 그보고서를 읽자, 옥타비아누스가격렬하게 맞대응했다.
균열
며칠 후, 회의 도중 그는'알렉산드리아 할양을고발했다. 로마인들의적대감이 커지자안토니우스파는 이탈리아를떠나 에페수스로 가서안토니우스와 합류했다.마침내 나라는 완전히분열되었다.로마의 이익에 반하여안토니우스를 계속 따를것인가? 옥타비아누스를따라 그의 적과 '이집트여인'을 공격할 것인가?
원로들이 갈등하는 동안동방에서 클레오파트라와안토니우스는 에페소스,사모스, 아테네 등과동맹을 맺어 방대한군대를 육성하고 있었다.
동방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B.C. 32년 봄,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와 에페수스에서합류해 거처를 정하고, 강력한 육군과 해군을 그곳에집중시켰다. 클레오파트라는최고 여사령관의 역할을맡았으며 그녀의 이름을 한자씩 새긴 방패를 든 로마군인들의 호위를 받았다.안토니우스와 함께 그녀는법을 관장하고 모임과회의를 주재했으며, 말이나가마를 타고 도시를가로질러 다녔다. 이따금
안토니우스가 가마 뒤를따라 걸어오기도 했다.
으레그렇듯 클레오파트라도정복지를 착취했다.페르가몬의 20만 볼루미나."안토니우스는카니디우스에게 16개군단과 함께 해안 쪽으로내려가도록 명령을그리고자신은 클레오파트라와함께 에페수스로 향했다.거기서 그를 위해갤리선과 배들이건조되었는데, 그중200척은 클레오파트라가의 동상과 예술품, 특히 에페소스의 아폴론 상,트로아스 지방의 '로에톤의 아이아스 상 같은 것들이페르가몬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실려 갔다.
여왕의 권력 행사에 충격을 받은 안토니우스파는 그녀를알렉산드리아로 되돌려 보내자고했으나, 카니디우스가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여왕이 대단히의욕적이며 안토니우스의 동방경영에는 이집트가 필수적이므로댄 것이었다.클레오파트라는 또한2만 탈렌트의 자금과여왕이 꼭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전쟁중 병사들이 먹을 수있는 식량을 지원했다.
그렇게 힘을 키운 뒤이들은 사모스로 항해해가서 축제를 베풀며마음껏 즐겼다. 그들은주변의 왕, 왕자. 민중에게전쟁 수행에 필요한 모든장비와 몸자를요구했듯이, 이번에는익살꾼들과 음악가들과동시에 전략을 준비했다. 5월에는 아테네로 배우와 광대들을 사모스로있었다.
또한 그는 '그토록 오래어마어마한 왕국을 통치한' 여왕의현명함을 일깨우기도 했다.4월이 되자 안토니우스와클레오파트라는 사모스로 떠나그곳에서 축제의 나날을 보내면서가서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아크로폴리스광장에는 그들을 신성화한 상이 세워졌다. 여름이 시작될무렵,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와 이혼함으로써 여왕은데려오라고 명령했다."
더없는 승리를 거두었다.옥타비아누스는 후적를행사하기로 결정하였다.그러자 플란쿠스와 티티우스같이 안토니우스의 모든 비밀을 이달리아와 들을 동탕의 모든알고 있는 절친한 친구들이 옥타비아누스 편에 서서안토니우스의 유언장이 있다고 알렸다. 옥타비아누스는베스탈리스(베스타 여신을 모시는 처녀들)에게 맡겨져컹스럽게 보관된 유언장을 탈취하여 원로원에서 읽었다.
디온 카시우스는 이렇게 전한다. "안토니우스는 유언장에서케사리온이 실제로 카이사르의 아들임을 신 앞에 맹세했으며,
자기가 기른 이집트 여인의 자식들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고,죽은 뒤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오파트라 곁에 묻어 줄 것을
요구했다."지방에서 군사를모집했다.
그는 자신이 로다 고대종교의 수호자임을자처했으며 전쟁의 신마르스의 보호를 받고있다고 했다. 그는마르스를 위해 사원을축조하도록 했으며 떠날 때마다 다르스셔성스러운 의식을 행했다.
이집트여인에게 한 선전포고
옥타비아누스의 정교한 여론조작에이용당한 로마 시민이 분노를 자아낸 것은특히 유언장의 마지막 구절이었다.안토니우스는 모든 권력을 박탈당했고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를 상대로장대한 선전포고식을 치렀다. 전통에 따라선전포고식용 사제 의상을 입은 옥타비아누스는마르스(마르스는 로마의 전쟁신) 벌판에 있는벨로네(로마의 전쟁여신) 신전 앞에서 나무창을던졌는데, 이 행위는 외적에 대한 공격을 상징한다.
BC. 32년 10월 전쟁이 선포되었다. 선진포고한 대상은 디온카시우스의 표현에 따르면 '신 앞에서 카피롤리움 언덕에정의를 구현하겠다고 맹세한 이방의 여인, 클레오파트라였다.신성한 도시의 심장부로 진입하겠다는 위험한 적에 대한선전포고였던 것이다!클레오파트라를 험담하는 악선전이 유포되는 동안옥타비아누스는 이탈리아, 갈리아, 아프리카, 시칠리아,
사르디니아에서 그를 돕겠다고 선서한 공문을 받았다.
군주국에 대항하는 자유의 투사이자 동방에 대항하는서방의 투사, 야만족에 대항하는 로마의 투사로자처할 수 있게 된 그는 자신감에 차서 동방으로돌진했다. 이제 파트라에 머무는 클레오파트라와안토니우스를 만나는 일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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