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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누스의 진정한 승리

악티움 해전을 기억하는가? 정치 신화의 경지에 오른 믿을 수 없는 여신, 이집트의 수치로 보았을 뿐이다. 영토확장 신화와 맥을 함께해 왔다. 이러한 편견은 수세기를 거쳐 이어져 로마를 불행에 빠지도록 한 흥 폭한 복수의 그를 기리는 주현절은 역사가들만 기억할 군주제를 통합하려 한 옥타비아누스의 승리, 영광스럽지 못한 승리였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신격화되었던 옥타비아누스는 죽었고뿐 사라져 버렸다.아니다!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의 위대한 승리란 카이사르의 모든 서류를 불태워 버렸던 사건뿐이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보내는 카이사르의 개인적인 편지뿐 아니라 B.C. 44년 3월
15일 이후 14년간 안토니우스가 보관하던서류들을 불태웠다. 규범이 된 공식적 사실 외의 모든 자료들을 없앤 역사 검열자, 범죄자가 승리를 거두었다. 이승리 덕분에 우리는 카이사르의 궁극적인의도와 그 의도에 대한 안토니우스의 대응에 대해 억측할 수밖에 없다. 궁극적인 의도를 작성하려는 이 글이 그 첫 번째 억측이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추락된 명예

옥타비아누스가 거둔 또 하나의 승리는후손들이 두 사람에 대해 가지는 편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헌학자들 이고진 문학에서 나타난 고대인 옹호 시사한 소실에서 주인공을 봉 해이시에 따라 중상모략에 맞서 이상보로 네드(1610-163)는 164년에 집필을 내해 이야기한다. 원망할 수 있겠는가? 이집트에서는 클레오파트라에 대한이 지는 전심을 믿는 모든 이들과 기억이 빛나는 전설로 승화된다.

 

학자들은 그녀를 이집트의 가장 사려 깊은 여인으로 칭송하고 국민들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대부분의 거대한 기념관에서 그녀를 기린다. 프랑스 여기저기에 카이사르의 야영지와 도로가 있듯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모습은 몇몇 특징들로 간략화되어 작자 미상의 로마의 위인들에 보이는 풍자적인 모습만 남게 되었다.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사랑으로 넋이 빠진 안토니우스는 악티움에서 아우구스투스에게 대패한다. 그는 왕좌에 앉았던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와 자살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를 유혹하고 그녀의 사랑을 바침으로써 그토록 왕위를 빼앗고 싶어 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의 죽음을 얻는다.

 

역사가 흥미로운 것은 미덕과 악덕,정열과 같은 정신과 관련될 때이다. 따라서 내게 클레오파트라의 생애만큼 흥미로운 역사의 단편은 없다. 그녀는 로마사의 가장 인상적인 상황과 관련되어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정열이 거대한 사건들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역사가들은 클레오파트라에 대한비방을 사명으로 삼아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어떤 여자도 그만큼 엄청난 불행을 야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만큼 무고한 여인도 없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B.C.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건설한 매혹적인 도시 알렉산드리아. 학문, 예술, 대건축 물, 풍요로움으로 이름 높았던 그 도시는 이제 흔적도 없다. 우리는 스트라본의 기록을 통해이 도시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에서오랫동안 체류했던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그의 책 지리학서 이집트 가까이 위치한 이집트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대해 상세히 묘사한다.

 

도시의 지형은 클라우스(고대 그리스의상으로 짧은 망토) 모양을 하고 있다. 각각 호수와 바다에 접해 있는데 언덕으로 경계가 정해진 도시의 길이는 약 6km 정도이다. 폭을 표시하는 지협들은 각각 1.5km 정도로 바다와 호수 사이에 놓여 있다.

 

도시 전체에 말과 마차 용대로들이 가로지르고 있을 뿐 아니라 수직으로 교차하는 상당한 폭의 두 길이나 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웅장한 유적지와 공원이 있으며 도시 면적의 1/4~1/3 을왕 궁이 차지하고 있다. 서로 질세라 왕들이 건물을 새로운 장식으로 꾸민 데다가 이미 존재하던 건축물에 계속 증축을 해 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문해 본 이들은 알겠지만 무역선의수출량이 많기 때문에 바다보다 호수에 적재량은 도착할 때보다 떠날 때가 훨씬 수 있는 두 항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알렉산드리아는 호수와 바다로 진출할 있는 항구가 더 번성했다. 알렉산드리아를 무역활동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 세마란 방이 있다. 그들은 수익을 4천에는 왕들이, 이제는 황제가 제명한다.

 

소마라고 불리는 곳도 왕궁의일부인데, 이곳은 여러 왕들과 알렉산더 4 왕의 묘를 모시는 장소이다. 도시는 양끝이 대양과 접해 있는데, 북으로는 이집트 해, 남으로는 마레오 티스라고 부르는 마레 아호가 있다. 호수는 수많은 운하를 통해 유입되는나일강의 물로 채워진다. 운하들은 호수의 최상부와 측면에서 홀러 든다.

 

운하를 통해 운반되는 물건의 양은바다를 통해 도착되는 물건의 양보다 훨씬 남다. 알렉산드리아에는 수입량보 다식 재량은 도착한 때 보다 떠날 때가 훨씬 더 많다. 알렉산드리아는 호수와 바다로 진출 것이다.

 

호수의 물을 증발시키면 호숫가는 진탕이 되고, 진탕이 뿜어내는 축축한 증기로 공기가 오염되어 전염병이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여름이 시작될 때면 나일강의 물이 불어 호수를 가득 채우기 때문에 불결한 공기의 원인이 되는 진탕이 생길 수가 없다. 게다가 이때쯤이면 북에서 지중해의 계절풍 이광 대한 바다를 가로질러 붙어 온다.

 

알렉산드리 아인에게는 여름도 살기 좋은 계절이다. 카노 보스는 육로로 갈 경우 알렉산드리아에서 약 23km 정도 떨어진곳이다. 카노보스는 이곳에서 죽은 메넬라오스의 항해사 카노브의 이름에서 따온 지명이다.

 

이곳에는 숭배의 대상인세라피스신의 성소가 있다. 세라피스 신이 이곳에서 많은 병을 치유해 주었기 때문에 의지체 높은 이들은 신앙심을 가지고 치료를 하기 위해 묵으러 온다. 어떤 이들은 글을씬써서 그 효험을 보장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곳에서 이루어진 신탁의 증거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볼 만한 것은 축제 때가 되면구를운하를 통해 알렉산드리아에서 오는 사람들의 무리이다. 작은 배 위에 올라탄 그들은 플루트의 곡 곽조에 맞춰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춤을 춘다. 어떤 할 이들은 카노 보스의 운하 가까이 있는 그들의 거처에서 휴식을 취하며 즐기기도 한다.

 

2022.05.18 - [분류 전체보기] - 역사에서 신화로

 

역사에서 신화로

클레오파트라 '라는 인물의 역사적 진실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에 대한 역사적 증언을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녀의 무덤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녀를 재현한 작품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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