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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그 사랑의 조건 인간은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이 삶이 모여 개인의 삶이 되고, 개인들의 삶이 모여 한 시대가 되며, 시대와 시대가 모여 하나 의거 대한 역사를 이룬다. 이 역사의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왔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역사의 한 과정을 이루며 흘러갈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그 사랑의 조건 역사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신의 의지가 실현되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인간 이성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인간 이성에 대한 확신은 헤겔에서 절정을 이룬다. 헤겔은 절대 이성이 자신을 구현해 가는 과정, 즉 자유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과정 자체가 역사라고 말한다. 이런 역사 인식에 유물론자들은 반론을 제기한다. 절대 이성의구현이나 자유의 구체화로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단순한 관념의 산물일 .. 더보기
빛과 어둠 사이에 존재하는 것 빛이 세상을 지배하고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던 시절이 있었지만 천사들 사이에서는 빛이 지배하는 어둠에 동조하는 공작이 억압과 저항 속에 서 있었습니다. 빛과 어둠 사이에 존재해요 스트라이커 천사의 승진은 코너를 비추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멸종 위기에 처했지만,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빛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빛과 함께 사랑과 존재를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둠, 공작은 멈췄습니다.빛과 어둠을 거스르고 그것을 버리세요. 빛과 어둠, 빛과 어둠이 아닌 땅 사이에서 공작의 외로운 전투가 시작됩니다. 도덕은 종종 금지되거나 강요됩니다. 살인은 도덕적으로 나쁘고, 그것은 그들이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파란색과 붉은색 종양은 언제,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무차별.. 더보기
도덕도 시대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도덕적 판단이 논란과 계산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부인도 있다. 흄은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 중 하나이다. 도서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행복을 침해합니다. 사실에 근거한 판단은 부정할 수 없다. 도덕성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러나 흄은 "도서관에서 소음을 내는 것은 좋지 않다"는 가치에 대한 평가는 판단에서 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도서관의 소음을 주의 깊게 분석해도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없다. 도덕적 악의. 흄의 방식대로라면, 진실은. 가치관과 우리가 하나의 도덕적 명제의 관점에서 혼동하려고 하는 것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지만, 인간의 행복과 도덕적 가치 사이에는 논리적인 연관성이 없습니다. 에어 A.J. 에어와 같은 사람들은 도덕적 판단과 감정적 표현 사.. 더보기
옳은 것의 이유 어떤 사람들은 다양한 도덕적 판단을 할 때 우리가 도덕적 행동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선과 악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도덕적 판단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많은 종교인들은 신이 선과 악의 기준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계명은 지켜야 할 선이며, 하나님이 금하는 악은 할 수 없는 악이라고 하셨다. 옳은 것의 이유 하나님의 명령이나 금지가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되고, 하나님의 의지는 인간이 무조건 지켜야 할 인간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판단 기준이 하나님이라면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이나 금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럴 경우 '하나님이 그런 명령과 금지를 주신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행동을 취하세요.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 더보기
옥타비아누스의 진정한 승리 악티움 해전을 기억하는가? 정치 신화의 경지에 오른 믿을 수 없는 여신, 이집트의 수치로 보았을 뿐이다. 영토확장 신화와 맥을 함께해 왔다. 이러한 편견은 수세기를 거쳐 이어져 로마를 불행에 빠지도록 한 흥 폭한 복수의 그를 기리는 주현절은 역사가들만 기억할 군주제를 통합하려 한 옥타비아누스의 승리, 영광스럽지 못한 승리였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신격화되었던 옥타비아누스는 죽었고뿐 사라져 버렸다.아니다!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의 위대한 승리란 카이사르의 모든 서류를 불태워 버렸던 사건뿐이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보내는 카이사르의 개인적인 편지뿐 아니라 B.C. 44년 3월 15일 이후 14년간 안토니우스가 보관하던서류들을 불태웠다. 규범이 된 공식적 사실 외의 모든 자료들을 없앤 역사 검열자, .. 더보기
역사에서 신화로 클레오파트라 '라는 인물의 역사적 진실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에 대한 역사적 증언을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녀의 무덤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녀를 재현한 작품 역시 전신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실제로 고대의 연대기 작가 중에도 그녀와 동시대의 인물은 아무도 없고, 그저 그녀와 관련된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를 다루면서 그녀에 대해 간접적인 언급을 할 뿐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역사에서 신화가 되는 과정 그리스인이나로마인 모두 대부분 동양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으니 여자의 왕권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 위가 없었다. 양한 서사시 작가들은 흔히 아우구스투스의 치적을 찬양하고, 그의 적인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를 모략하기 위해 그녀를 아주 단순화시켰다. 그녀.. 더보기
알렉산드리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B.C. 30년 8월 1일, 알렉산드리아를 포위한 옥타비아누스는 군중을 안심시키려는 목적으로, 앞으로 알렉산드리아를 관대하게 대할 이유를 알리는 연설을 그리스어로 했다. 알렉산드리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알렉산드리아의 아름다움과 부, 그곳을 세운알렉산더에 대한 존경, 마지막으로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자인 그저께 이오스와 나운 우정이 그 이유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안틸 루스와 케사 리온을 찾아 도시를 살샅이 뒤졌다. 스승에게 밀고당한 안틸 루스는 카이사르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클레오파트라가 세운 사원에 피신해 있다가 그 자리에서 참수당했다. 그러나 케사 리온은 어머니가 준 엄청난 은을 갖고 인도 쪽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비탄에 찬여왕 옥타비아누스의 허락을 받아 안토니우스의 장례를 치른 클레오파트라는 정복자에.. 더보기
혼란한 정국을 정리하러 이탈리아로 간 옥타비아누스 클레오파트라는 혼란한 정국을 정리하러 이탈리아로 돌아간 옥타비아누스가 다시 원정에 오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옥타비아누스가 자신과 대립하는 것을 넓어서 안토니우스와 대립하고 결판 지으려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도피, 경이로운, 그러나 너무 대담한 그리하여 그녀는 인도쪽으로 도피할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녀는 악티움 해전에서 남은 배들을 수레에 실어 홍해 쪽으로 옮기도록 명령했다. 이에 대해 "전쟁과 굴욕의 위협에서 벗어나 자신의 모든 금은을 가지고 지중해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기 위해서"라고 플루타르크는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배는 옥타비아누스의 사주를받은 페트라의 아랍인들에게 포획되고 만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옥타비아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일련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