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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우스의 죽음 B.C. 48년 9월 28일, 그리스의 파르 살루스 전투에서 카이사르 군대에 대패한 폼페이우스가 뜻밖에 알렉산드리아에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의 문턱에 도착했을 때 도착한 것이다. 있어야만 했다. 폼페이우스의 죽음, 죽은자는 말이 없다 폼페이우스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명령에 따라 암살당했다. 폼페이우스는 그에게 피신할 곳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으나 배신당한 것이다. 이제 동방에는 카이사르의 적수가 없었다. 패배한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는 40일이나 지중해를 표류하다가 아울 레 테스의 자녀들에게 안식처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가 한 행동은 프톨레마이오스와 그의 섭정관들을 잘못 판단한 데에 따른 것이었다. 포틴과 테오도투스는 손익 계산을 면밀히 한 후에 폼페이우스를 죽이기로 결.. 더보기
천체순환도의 일부. 천문학과 점성술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의 코는? 클레오파트라는 단지 아름답기만 했을까? 디온 카시우스는 그녀의 적인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를 찬미하는 글을 쓰는 데 골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레오파트라를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절세미인으로, 저항할 수 없는 마법을 지닌 여인으로 노래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미친 영향 그녀의 외모와 목소리 모두가 너무나 세련되고 매력적이어서, 이 세상에서 사랑을 거부하는 어떤자의 마음도 정복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나이 들어 목적이 된 사람의 마음까지도. 반면 플루타르크는 좀 더 신중하다. 그녀의 미모 자체가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었으며, 타고난 미모로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정도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를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을 보면 그 말이 확실한 듯하다. 그렇지만 클레오파트.. 더보기
클레오파트라와 프톨레마이오스13세 B.C, 51년,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 레 테스)는 자신의 장녀인 클레오파트라와 장남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을 유언한 뒤 죽음을 맞았다. 18세의 클레오파트라는 라지드 법에 따라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 살이 갓 넘은 아이와 형식적인 결혼을 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 통치의 전권을 부여받았다. 이리하여 클레오파트라 7세는 이집트 남부와 북부 전역을 통치하는 '두 땅의 여왕'이 된다. 18세의 여왕 두 가지 얼굴의 클레오파트라이다. 알렉산더 전우의 후예인 클레오파트라에게는 그리스의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이집트 사원의 저부조에서는 파라오의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관례에 따라 클레오파트라 7세에게는 '필로 파토르(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라는 칭호가 부여.. 더보기
플루트를 부는 파라오 B.C. 80년, 로마의 집정관인 술라는 이집트의 여왕 페레 니케와 그녀의 사촌 프톨레마이오스 11세의 강제 결혼을 위해 외교적으로 개입했다. 그러나 이것은 죽음의 결합이었다. 몇 달 후, 왕이 여왕을 죽이자마자 그 자신도 암살된 것이다. 다시 왕위는 프톨레마이오스 10세의 서자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에게 돌아갔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네오스 디오니소스(새로운 디오니소스)' 필로 파토르(아버지를 사랑하는 자)' '필로 메토르(어머니를 사랑하는 자)'라는 영예로운 별칭을 얻지만, 백성들은 그를 '아울 레 테스(플루트부는 사람)'라고 불렀다. 플루트를 부는 파라오? 이렇듯 클레오파트라의 아버지는 축제와 연회를 좋아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술에 취해 무희들 사이에서 악기를 연주하곤 했다. 반면 당시 나라를.. 더보기
박물관의 중심지 여름이 끝날 무렵 땅을 비옥하게 해주는 나일강의 범람이 시작된다. 이때는 지중해 주변의 다른 강들이 마를 시기이다. 고대인들은 나일강이 이집트 땅에 가져다주는 풍요에 경탄했다. 박물관의 중심지 또한 알렉산드리아는 지적, 예술적 교류가 매우 활발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물론 기하학의 유클리드, 시인 테오크리토스와 칼리마코스, 조각가 아펠레스 등이 활동하면서 절정을 이루었던 B.C.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 학파 시대에는 못 미치지만, B.C. 1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역시 당대 지식인에게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문화의 중심지는 왕족이 사는 거리에 있던 도서관과 박물관이었다. 두 건물은 다른 왕들과 마찬가지로 자료 수집을 권장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 때 건립되었다. 클레오파트라 시대에 이 도서관은 70만 권에 달하는 .. 더보기
빛나는 도시 알렉산드리아 클레오파트라가 태어난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가장 큰 도시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다른 70여 개의 도시에 그랬던 것처럼 B.C. 322년, 이 거대한 인구 조밀 지대와 작은 도시 라 케데트(그리스 정치적 수완이 능란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들은 어로 라코 티스)를 세라피스와 이집트의 고대 선택해 자신의 이름을 여신인 이시스를 결합시켰다. 역사의 시작점 여신은 붙이려고 했다. 병 고치는자,뱃사람의 그러나 라 케데트는 수호자, 뮤즈의 인도자 등 수많은 이름을 가졌다. 거대한 알렉산드리아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플루타르크는 알렉산더의 꿈속에서 존경스러운 얼굴과 자태를 지닌 백발의 노인이 알렉산드리아를 지정해 주었다고 전한다.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만나는 곳이요, 나일강 삼각주에서 떨어져 있으며, 북으로는 파로.. 더보기
알렉산드리아, 등대의 도시 B.C. 304년, 알렉산더 대왕의 디아도코스 ('후계자'란 뜻으로, 알렉산더의 후계를 다툰 장군들:역주)로서 공식적으로 프톨레마이오스 라지드 왕조를 세운 사람은 라고스의 아들 소테르 (구제자: 역주), 즉 프톨레마이오스 1세이다. 그는 바로 클레오파트라의 선조이다. 클레오파트라 이전에도 클레오파트라(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가진 공주가 여섯 명 더 있었다. 클레오파트라 이 어린 딸의 증조모는 페르시아 혈통의 시리아 공주인 셀루키데스로 바르바르(야만족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스 혈통을 이어받았다.) 곧 이어 아르시노에라는 딸과 훗날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14세가 될 아들 둘이 더 태어나지만, 가족 간의 유대는 전혀 없었다. 이전의 많은 이집트 왕가처럼 이 집안도 음모와 야심과 질투로 갈기.. 더보기
야경증 증상 대처방법 어느 가정에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는 집이 있어요. 어린아이가 자다가 발작하는 듯이 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갑자기 일어나서 엄청나게 울면서 부모가 쉽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울지요. 주로 어린아이에게 발생하는 야경증(야제증)이 있을 확률이 있습니다. 7살이 된 아들은 지금은 이런 증상이 없어졌다만, 만 36개월 이전까지는 이렇게 밤에 깨서 울고불고하는 바람애 너무 힘들었어요. 야경증 증상 대처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야경증 증상 아이의 야경증 증상으로는 잠든지 몇 시간 안돼서 갑자기 일어나 큰일이라도 난 듯이 비명을 지르며 웁니다. 매우 놀란 듯이 비명을 지르고 보챕니다. 이때는 달래주어도 소용이 없고 다시 재우려고 눕혀도 더 울어대면서 밤잠을 제대로 잘 수없도록 만듭니다. 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