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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나라

실업이 존재한다는 것은 노동시장의 기능 장애

만일 노동시장이 아무런 장애 없이 기능한다면 완전고용은 즉각적으로 보장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실업 이론의 출발점이다. 실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의 첫 번째 명제를 거꾸로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실업이 존재한다는 것은 노동시장의 기능에 장애가 있다는 뜻이다.

 

최저임금제를 철폐하라?

남은 일은 최종적인 분석에서 책임이 있는 자로 등장하는 임금노동자들을 자연스럽게 지적하면서 시장의 장애를 일으키는 수만 가지의 이유를찾아내는 것이다. 어떤 시장이든 시장의 조화로운 기능에 가장 명백한 장애를 일으키는 것은 가격을 강요하는 규제의 존재나 가격의 상·하 한선을 정하는 것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곡식의 가격을 지원하면 생산량, 즉 공급량이 수요량을 크게 초과하게 된다. 하한가가 있다면 농민들은 대량 생산할 동기를 갖게 되고 구매자들은 다른 상품을 찾아 나서게 된다.

 

왜 굳이 노동에 다른 원칙을 적용하려고 하는가? 시간당 최저임금을 강요하는노동가격의 규제는 바로 임금의 하한선을 결정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 임금 수준 아래에서는 행위자들이 계약을 맺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 최저임금이 시장의 균형 가격보다 높은 수준에서 책정되면 노동의 공급은 필연적으로 수요를 초과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여가를 포기하게 되며, 기업은 노동의 한계생산성이 이 임금 수준보다 높은 범위에서 생산을 제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 검토하지 않은 논지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기업은 기술적 선택을 하게 되는데,이러한 선택을 재조정해야만 하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는 기업이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보다 기계를 더 많이 사용하는 방향으로 기술적 선택을 재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최저임금제와 같은 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노동자의 수와 이 임금 수준에 이윤

최지임금제는 숙련되지 못한 개인들의 임금을 인위적으로 높게 책징합으로써 이 임금 수준에 일하려는 노동자의 수와 이 임금 수준에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고용의 숫자 사이에 괴리를 초래한다. 간단히 말해서 인정 많고 순진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가난한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최저임금제는 결국 실업을 발생시켜서 보호하려 했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

 

다행히도 이런 비극에 대해 모든 경제학자가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하겠는가? 가난한 자들은 이 사실을 언제서야 이해할 것인가? 쌔뮤얼슨(P.Samuelson)은 매우 친절하게도 다음과 같은 교육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젊은 흑인이 고용주가 자신에게 시간당 1.6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당연히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이 임금 때문에 그가 취직을 할 수 없다면 말이다.

 

비숙련 노동자의 실업을 해결하려면 최저임금제를 철폐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쉴새없이 이런 권고를 해대고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발라뒤르(E, Balladur) 정부가 이 권고를 받아들여 그대로 실행할 뻔했다. 발라뒤르 정부는 '직업훈련 게 약 이라는 제도를 추진했는데, 이는 젊은이들에게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입금 을지 블하기 위한 전략에 불과했다.' 불행히도 해당 젊은이들은 스스로 이 제도를 거부했다.

 

사람들이 싫다는데도 그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특히 필연적으로 최저임금보다낮은 생산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젊은이들과 노인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고용주로 하여금 최저임금 을지 불하 게 하는 것은 숙련공과 비숙련공 사이에 존재하는 이윤의 차이를 없애버려서 최저임금보다 낮은 생산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실업자로 만든다. 그것은 젊은이나 노인에게 적용된다.”

 

통제하려고 하는 국가인가, 아니면 관료인가?

그렇다면 최저임금제와 같은 바보 같은 제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러한 실수를 저지른 책임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것은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국가인가, 아니면 관료들인가? 또는 선거의 압력에 밀려 어느 날 갑자기 법안을 통과시켜버리는 국회의원들인가? 상당히 그럴듯한 분석이다. 발라뒤르 정부는 1993~95년에 집권한 우파 정부인데, 최저임금제를 철폐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사회적·정치적 부답이 있었기 때문에 '직업훈련 계약'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최저임금제의 예외조항을 도입하였다.

적으로 임금노동자나 유권자의 도구일 뿐이며,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경제적 역학관계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노동시장의 기능을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보다도 노동시장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최저임금제는 임금노동자들이 시장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이다. 임금노동자들은 경쟁의 법칙을 무시하고 서로 연합하는 좋지 못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자기들 간의 협약을 통해 노동시장에서 독점적 권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임금노동자들은 한 명씩 고용되기 위해 노동시장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연합을 형성하여(노동조합) 가격의 수준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그것은 마치 석유수출국 기구(OPEC)의 카르텔이 석유 공급을 독점하여 가격 인하를 막으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떻게 보면 최저임금제는 이러한 노동조합의 권력을 합법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그렇게 머리가 나쁜 것일까? 알랭 맹1가 통찰력 있게 지적하듯이 “집단이기주의와 비겁함의 연합은 부당한 현실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둥식을 뻔뻔하게 은폐하고 있다.

 

그 등식이란 일부가 차지하는 과다한 임금이 다 큰 사람들의 실업을 초래한다는 사실"인데 그들은 이를 보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머리가 나쁘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좋다고 하겠다. 노동조합은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노동조합은 연합한 회원들이 가지고 있는 합리성의 명백한 표현일 뿐이다. 이 피 돌이 회원들은 기업의 노동 수요 형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2022.05.27 - [분류 전체보기] - 어떻게 먹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떻게 먹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노동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었다. 노동은 자연을 접하면서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움직이며 진행되는데, 노동에는 동전의 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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